휴대폰도 감청된다.

 

월간중앙 2001. 5월호 기사로 길지만 천천히 읽어보면 휴대폰의 발전과정, 정보통신의 추세 등 휴대폰 관련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 동통신 强國 대한민국은 지난 3년간 휴대폰 감청논쟁을 치렀다. 도·감청 남용으로 국민적 저항에 부닥친 정부가 기술적으로 안된다고 못박은 것이 화근이었다. 결론을 말하면 CDMA 디지털 휴대폰도 감청이 가능하다. 미국에서 이미 감청장비가 나왔고, 이스라엘에도 판매회사가 등장했다. 훨씬 전에 전세계 구석구석을 감청하는 미국 NSA는 CDMA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퀄컴'사에 감청 방지장치를 요구했고 결국 완성했다. 그 프로젝트名이‘콘도르'다. 감청되기 때문에 미국 주요 인사가 쓰는 휴대폰에 통신보안 조치를 취한 것이다. 우리는 국가정보원까지 나서서 감청이 불가능하다며 논쟁에 휘말려들었다. 간첩들이 휴대폰으로 통신하는 세상이다. 국가안보의 보루 국정원은 정말 디지털 휴대폰에 무방비인가?
마감 직전인 2001년 4월16일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이 의원총회에서‘또'휴대폰 도·감청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이날 의원총회에서"휴대폰 비밀번호에 대한 보호가 전혀 보장되지 않아 휴대폰간 통화도 전부 녹음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국가정보원이 통신업체에 감청 대상 휴대폰의 비밀번호를 요구했다는 제보를 받았는데 이는 그동안 "디지털 휴대폰 감청 능력이 없다"는 국정원의 주장을 뒤엎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제보자의 신원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당 인권위원회 명의로 받은 제보인데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계속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간 추적해 왔던‘디지털 휴대폰 감청'취재는 이처럼 막판까지 머리를 쥐어짜는 ‘조각그림 맞추기'와 같은 것이었다. 단편적인 사실들이 등장할 때마다 감청‘된다, 안된다'의 논란이 벌어지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지기를 3년이나 반복해온 논쟁이다. 기자가 이 끝나지 않는 논쟁에 끼어들기로 마음먹은 때는 지난해 11월 중순. 디지털 휴대폰 감청장비가 미국에서 개발되었다는 뉴스가 나온 뒤였다.

결론적으로 디지털 휴대폰은 감청된다. 아래의 글은 그 추적기다.

또 다시 전화선 저쪽에서 수화기 내려놓는 소리가 ‘뚝-'하고 들려왔다. 벌써 몇번째 이러는지 헤아리기도 어렵다. 영어로 묻든 한국어로 묻든 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다. 이쪽에서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끊기는 전화....
뉴 욕에 본사를 둔 CCS인터내셔널. 감청장비를 생산판매하는 보안용품 전문회사다. 만약 그가 이 회사의 한국쪽 마케팅 담당자였다면‘김○○'일 것이다. 그 이름 석자도 그나마 국내 감청장비 수입업자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힘들게 알 수 있었다. 영어식 이름이‘앤드루 김'인 이 담당자는 이 회사가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 보안시장을 뚫는 과정에서 한국 업자들 사이에도 얼굴이 알려진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내 보안업계 종사자들에 따르면 이 회사는 자신들이 신뢰할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일절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한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극도로 경계한다는 것이었다.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라도 벌였으면 이토록 무기력해지지는 않을 텐데 이 회사는 아예 묵묵부답이다. 통화가 영 안된 것은 아니다. 한두마디 대화가 오간 뒤 한국의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면 영락없이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궁리 끝에 컨설팅업체에 부탁해 ‘고객'처럼 접근해 보았지만 별무효과였다. 여러번의 실패 끝에 이 회사의 한국 마케팅 담당자와 접촉해 보았다는 국내 보안업계 관련자들에게 하소연했더니‘당연하다'는 반응이다.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또는 기업)이 문의하면 100% 접촉에 실패한다는 설명이었다.

기 자가 접촉을 시도한 것은 정확히 말하면 CCS인터내셔널은 아니다. 그 자회사인 G콤사. 한국에서‘된다, 안된다'하며 3년 동안이나 끊이지 않고 논쟁이 벌어졌던 바로 그 코드분할다중접속(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디지털 휴대폰 감청장비를 개발해 판매한다고‘홍보'한 회사다.

CCS인터내셔널은 한나라당 김형오(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의원이 지난해 11월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회사가 만든 디지털 휴대폰 감청장비를 폭로하면서 우리 언론에 알려졌다. 1950년대부터 감청 및 도청방지장비를 다뤄온 이 회사는 국제 보안업계에서 그 기술력이‘정상급'은 아니지만 마케팅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김의원이 공개한 것은 이 회사에서 만든 디지털 휴대폰 감청장비 카탈로그.

한국에서 3년간이나 벌어졌던, 디지털 휴대폰 감청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는 논란을 비웃기라도 하듯 CCS인터내셔널사는 버젓이 디지털 휴대폰 감청 장비를 ‘시장에' 내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 회사가 자회사 격인 G콤사 명의로 내놓은 디지털 휴대폰 감청 장비 이름은 ‘CDMA 네트워크 셀룰라 인터셉트 시스템'이다.

유럽 무선통화 방식인 GSM에 맞는 디지털 휴대폰 감청기는 1996년께 국제 보안시장에 물건이 나와 있었는데, 한국이 채택한 CDMA 네트워크를 겨냥한 감청기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상식의 눈으로 볼 때 이 회사가 겨냥한 시장은 한국일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에서 CDMA 방식을 채택한 나라는 미국·일본·한국 정도인데, 미국과 일본은 일부 지역에서만 이 방식을 채택했을 뿐이다. CDMA 방식의 원천기술은 미국의 퀄컴사가 갖고 있지만 이제 한국은 기술력에서 거의 종주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이 세계의 CDMA 단말기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를 넘나들 정도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CCS인터내셔널이 CDMA 방식의 디지털 휴대폰 감청기를 개발하면서 당연히 ‘한국 시장'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어쨌든 이 회사의 카탈로그 공개는 1998년도부터 3년째 이어져온 디지털 휴대폰 도·감청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느냐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물론 정부는 이 회사가 만든 감청기를 포함, 지금까지 CDMA 휴대폰 감청기를 ‘단 한대도'들여오거나 개발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휴대폰 도·감청 논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디지털 휴대폰은 감청의 사각지대'라는 공개적인 자백은 미묘하고도 간과할 수 없는 ‘후유증'을 낳고 있다.

처음 디지털 휴대폰 도·감청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만 해도 우리 정보기관 책임자들과 정보통신부 등 관련부처 담당자, 그리고 한국전자통신연구소 등 정부출연 연구소 관계자들은 한결같이"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비용 측면에서 현실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고 못박아 버렸다. 현재 한국이 채택한 CDMA 방식에서는"데이터(음성신호, 즉 통화내용)를 42비트(2의 42제곱)로 암호화하므로 사실상 해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정부 연구소에서 일하는 전공자들은 물론이고, SK텔레콤 등 단말기 제조업체, 정통부 등이 초기에는 일관되게 이와 같은 주장을 펼쳤다. 심지어 휴대폰 감청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높아지자 5개 이동통신업체들은 남궁석 정보통신부 장관의 권유에 따라 유력 일간지 5개지에 공동 명의로‘이동전화는 도·감청이 안된다'는 내용의 반박광고까지 냈다. 요컨대 야당 및 일부 언론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휴대폰끼리의 통화는 안전하니 마음놓고 쓰라는 것이다.

디지털 휴대폰 감청에 관한 기술적인 설명은 뒤에서 상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기본적인 이해를 위해 휴대폰 도청 논쟁 과정에서 제기된 상식적인 방법 세가지를 정리해 보자 세가지는 ▶휴대폰 복제 ▶전파 추적 ▶유선 전화를 도청하는 방법이다. 이에 대한 불가론을 정부쪽 입장 위주로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휴대폰은 저마다 고유 코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고유 코드를 복제해 다른 휴대폰에 심어 놓으면 똑같은 휴대폰이 두개 생겨 마음대로 감청할 수 있다는 논리. 일반 유선전화기에 전화기를 한대 더 달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감청되지 않는다. 휴대폰 도청 논쟁이 벌어졌을 때 민주당 김영환 의원이 국정감사 현장에서 직접 고유 코드와 전화번호까지 똑같이 복제한 휴대폰으로 도·감청시험을 했는데 감청이 불가능했다. 한쪽 휴대폰이 ‘먹통'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둘째, 휴대폰에서 나오는 전파를 추적하는 방식. 바로 이 대목이 논쟁의 핵심이다. 이제는 사라진 아날로그 휴대폰의 경우에는 음성신호를 그대로 주고받기 때문에 전파수신기와 감청장치만 있으면 일정 반경 안에서는 주파수를 맞춰 가는 방법으로 휴대폰 통화 내용을 엿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 또한 같은 대역의 주파수를 수백명이 동시에 쓰기 때문에 특정 권역에서 무차별적으로 감청을 실시한 뒤 원하는 통화 내용만 발췌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문제는 CDMA 방식의 디지털 휴대폰. 디지털 휴대폰은 음성신호 대신 암호화된 코드를 주고받는다. 암호가 2의 42제곱비트, 즉 4조4,000만개나 되는 비트(정보단위)로 구성돼 있어 암호를 푼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측 설명이었다. 또 암호를 풀었다고 해도 같은 기지국 내에서조차 64개의 전송채널 중에서 하나를 찾아내야 한다. 따라서 디지털 휴대폰 전파를 추적하는 것은 산술적으로만 봐도 256조분의 1의 확률이어서 역시 ‘불가능'이라는 설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