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수도권 A 골프장에서 있었던 일. 40대의 골프장 사장은 언제부턴가 자신의 방에서 은밀히 나눈 얘기가 밖으로 흘러나간다는 의심이 들어 고민 끝에 통신보안회사에 검색을 의뢰했다.
‘설마' 하며 검색을 함께 지켜보던 그는 사장실 책장 뒤쪽에 붙은 무선도청기를 확인하고는 아연 실색했다. 의심이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이런 도청 사례는 요즘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도청 기술이 첨단화하고 정보나 아이디어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면서 도청도 급증하고 있다.

최근 심부름센터에 의뢰되는 건들도 시시콜콜한 개인적 일보다는 기업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 전언. 사정이 이렇다보니 통신보안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도 속속 생겨나 성업중이다.

지 난 97년 창업한 한국기업보안㈜의 안교승 사장에 따르면 100건의 의뢰중 7~8건에서 도청이 확인돼 적발률이 7~8%에 달한다. 물론 어느정도 심증을 잡은 경우 의뢰하는 것이어서 일반화하기는 힘들지만 기업간의 도청이 심각한 수준까지 와있음을 입증해주는 수치다.

요즘 가장 많은 도청유형은 소형 도청기(녹음기+ 무선송신기+ 배터리)를 실내에 숨기고 건물주변에서 수신기로 청취하는 것. 도청기는 1회용 라이터에서 500원 짜리 동전 크기까지 다양한데 보통 반경 1㎞가 최대 청취거리다.

은폐 장소로는 전화기 속을 비롯해 시계 액자 화분 커튼 컨트롤러 등 사무실 집기 어디에나 가능. 작은 무선마이크를 숨기는 것은 이미 구식이라 잘 안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배터리의 수명이 짧은 것이 단점. 때문에 실내에는 통달거리가 수십m에 불과한 초소형 도청기를 설치하고 건물 옥상 등 바깥에 중계기(리피터)를 달아 최대 10㎞ 밖에서도 감청 가능한 기술이 선보이고 있다.

이 밖에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는 인피니티 도청기, A/C 콘센트 속에 도청기를 넣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A/C캐리어 타입 도 사용된다. 성능은 20평 크기 방에 하나만 설치하면 조그만 소리도 감청해낼 수 있는 수준.

내부에 도청기를 설치하는 대신 외부에서 레이저를 쏴 돌아오는 레이저에서 음성을 추출해내는 최신 설비도 있지만 워낙 고가장비라 아직 국내서는 발견된 적이 없다고 안씨는 설명한다.

도 청 장치가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은 기업체의 사장실 임원실 회의실 등. 주요 고객은 유통, 벤처기업 연구소 등이다. 요즘에는 M&A(기업 인수 및 합병)에 연관된 업체의 의뢰가 잦고 무기 중개상같은 특수 고객도 있다고 한다.

도청 장치가 발견된 기업의 대응 유형도 각각이다. 사색이 돼 당장 제거해 달라는 의뢰인들이 많지만 그대로 두고 역정보를 흘리는 곳도 꽤 있다. 일부는 내부 혹은 외부의 적을 알아내려는 목적으로 방치해두기도 한다고.

안 사장은 "도청기술이 발달해 전문가가 아니고는 발견이 불가능하다. 중요한 대화는 가급적 무선전화를 사용하지 말고, 휴대전화라도 CDMA 방식의 디지털 전화기기를 쓰면 보안성을 높일 수 있다. 유선전화는 ISDN 방식의 전화기가 그나마 안심할 만하다. 특별히 보안이 요구된다면 전문업체에 의뢰해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박수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