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밸리는 '도청밸리' (2000.04.13)

 

올초 코스닥에 등록한 버추얼텍 임원들은 기업비밀이 자꾸 새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임원 회의가 끝난지 몇 시간도 안돼 투자자들이 회의 결정사항을 미리 알고 문의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던 것. 당시는 이 회사가 코스닥에 등록해 연일 상한가를 친뒤 주가가 소폭 조정기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3월 초 회사 사무실을 옮긴 이후에도 이런 일은 계속됐다. 심지어 기업의 대외비 회의 내용까지 모 인터넷 증권정보 사이트에 게릴라처럼 잠깐 떴다 사라지기를 여러번 반복했다. 결국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전문 보안업체에 도청 감지 요청을 했다.

탐지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회사 곳곳에서 고성능 일본제 도청장비의 무선 주파수가 잡힌 것. 발신 장치를 근처 500m 안에만 놓아두면 얼마든지 대화나 전화 통화를 원격으로 도청할 수 있는 정밀 장치였다. 한 임원은 "그후부터는 대회의실에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회의를 하거나, 아예 휴게실로 자리를 옮겨 비밀회의를 개최합니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벤처기업들이 사설 불법 도청의 주타깃이 되고 있다. 특히 벤처기업 호황이 계속되면서 코스닥 상장기업은 물론 벤처캐피탈과 벤처기업 회계 법인까지 벤처 정보를 다루는 모든 기업에 도청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도청감지 업체인 B사는 "코스닥 시가총액 25위 업체중 30%가 최근 도청 탐지를 의뢰했다"며 "이중 3개 기업에서는 실제 도청용 무선 주파수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도청 공포는 벤처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벤처캐피탈(벤처전문 금융기관), 컨설팅 업체들도 도청으로 인한 정보유출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벤 처기업을 감사하던 대형 회계법인 C사도 최근 의뢰 기업의 핵심 비밀이 새나간다는 의심이 들자 도청탐지를 의뢰했다. 처음에는 내부관계자가 정보를 빼내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비밀회의 내용까지 그 다음날 시장에 루머로 떠돌자 아예 도청 탐지를 의뢰했던 것. 그 결과 사무실 근처에서 무선 도청 전파를 잡아냈고, 그 이후 사무실에선 중요한 기업비밀과 관련된 대화를 일체 나누지 않고 있다.

벤처기업에 대한 불법 사설도청은 벤처기업 정보가 곧바로 돈으로 연결되기 때문. 전략적 제휴나 무상증자 실시 등의 기업 비밀을 미리 알면 주식 매집으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어, 정보 브로커들이 벤처기업 주위로 몰려들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서울 강남 테헤란밸리의 벤처기업들은 이동통신, 네트워크, 콘텐츠 등 업종을 불문하고 도청탐지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내부정보가 유출된다는 낌새를 알아채고 도청탐지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기업비밀이 다 새나간 후라는 것.

네 이버의 이해진 사장은 "많은 벤처기업 CEO들이 사무실 도청 여부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CEO의 휴대전화도 가끔 바꿔 써야 한다는 말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야후코리아 염진섭 사장은 "정기적으로 보안업체에 도청 컨설팅을 받고 있으며, 아예 도청을 막아주는 장비를 구입할지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보안업체 B사 관계자는 "작년보다 도·감청 탐지를 의뢰하는 업체가 2배로 늘어 1주일에 3~5개 기업에 달한다"며 "특히 코스닥에 등록중인 벤처기업들의 도청 탐지 의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유출 막으려면 회의때 라디오 크게 틀고 보안업체 컨설팅 받도록 벤처 기업이 도청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 문가들은 도청 방법이 지능화되고 있기 때문에 도청을 100% 막을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초소형 발신 장치를 껌안에 넣어 도청하는 것을 포함 휴대폰, 시계, 계산기, 만년필 자체가 도청 장치 역할을 하는 등 갈수록 첨단기술이 동원되고 있다. 또 요즘에는 도청 타깃이 된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 발신장치를 붙여놓고 원거리에서 도청하는 장비도 많다.

하지만 벤처기업들이 조금만 신경쓰면 도청으로부터 기업 비밀을 지킬 수 있다.

먼 저 원격 도청을 막기 위해서는 창가에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회의를 하는 것이 방법이다. 또 중요한 내용은 종이에 적어가며 의사를 교환할 수도 있다. 기업인수·합병같이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는 아예 회사를 떠나 호텔이나 집에서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 현명하다.

하지만 이 방법들이 근본적인 처방은 될 수 없다. 일단 전화 혼선이 잦고 잡음이 들리거나, 내부 정보가 외부로 유출된다고 판단될 때는 전문업체에 컨설팅을 의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한국기업보안주식회사 안교승(37)사장은 "도청을 근본적으로 막아주는 장비를 중요장소에 설치하거나 몇달에 한번씩은 전문보안업체에 컨설팅을 받는 것이 기업비밀이 새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