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과거 중앙일간지 사장과 대기업 고위 간부의 대화를 불법 도청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도청 공포'가 다시 확산되고 있다.

정계 관계 재계 인사들은 "혹시 도청한 내 육성(肉聲) 테이프가 은밀하게 나돌고 있는 것은 아니냐"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림팀'의 도청은 빙산의 일각=안기부의 도청은 본부의 과학보안국(일명 8국)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졌으며 현장팀인 미림팀의 도청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국정원 전현직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미림팀의 현장 도청도 과학보안국의 도청을 토대로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과학보안국에서 정재계 인사들의 전화 도청을 통해 파악한 약속 장소 및 시간이 전달되면 미림팀은 현장에서 근접 도청에 나섰다는 것. 그래서 과학보안국의 도청은 ‘원청', 미림팀의 도청은 ‘하청'으로 불리기도 했다.

1997년 대선자금 대화 내용을 도청한 팀을 이끌었던 것으로 알려진 K 씨는 "당시에 ‘오더'를 받고 했지 내가 앞장서서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수백 명 규모였던 과학보안국은 2002년 10월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의 ‘대규모 도청' 폭로로 해체됐으나 국가 안보 및 대공 차원의 감청 기능을 하는 조직은 편제를 달리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또 시도 지부별 감청팀은 2003년 9월 국정원 조직개편 과정에서 5개 대도시의 권역별 감청팀으로 통합된 것으로 알려졌다. 감청팀이 지금도 주요 인사들에 대한 도청을 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은 21일 "국가 안보와 관련된 합법적인 감청 업무만 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청 공포와 보안업체 문의 폭주=그러나 정치인 등의 ‘체감 도청 공포'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일부 야당 의원은 "지금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지...", "당분간 주요 음식점 출입을 자제해야 할 것 같다"라며 찜찜해 하는 표정이었다.

일부 중진 의원은 추가 ‘X파일' 공개 가능성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영남 출신의 3선 의원은 "과거에는 지금보다 음식점에서 밀담을 나누는 경우가 더 많았다"며 "내 말이 언제 어떤 식으로 도청됐는지 알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 했다.

도감청 방지 서비스 문의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통신보안㈜ 안교승(安敎昇) 사장은 "유리창에 레이저 빔을 쏜 뒤 반사돼 오는 빔 속에서 음성만을 추출하는 방법 등 도청 기법이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며 "관련 문의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대기업은 산업스파이 문제 때문에 도청 방지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한 대기업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국내 업체에 보안컨설팅을 의뢰하기도 하지만 지난해 말 해외에서 도청 방지용 비화기 수십 개를 개당 100만∼200만 원에 들여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부 산하 중앙전파관리소는 "불법 감청설비 탐지업 등록업체는 13곳이지만 실제로 영업을 하는 군소업체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