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실태와 폐해

 

과도한 의심땐 TVㆍ인터넷등 외부와 차단...편집증등 유발 정상적 사회생활 불가능

 

충남 공주시의 Y씨는 최근 부쩍 자신과 닮은 이들이 방송에 자주 등장한다고 느낀다. 심지어 탤런트 J씨가 마치 자신과 일란성쌍둥이가 아닌가라고 여긴다. J씨를 보면 자신의 젊은 시절이 생각난다고 Y씨는 주장한다. Y씨는 또 아는 이들의 이름이 자주 방송에 등장하는 게 뭔가 꺼림칙하다. 누군가 불법 도청을 통해 자신의 사생활을 상세히 지켜본 뒤 이를 방송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고 Y씨는 굳게 믿고 있다.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 의혹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불법 도청이 도청 피해자의 피해망상과 편집증 등 정신질환까지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른바 `도청공포증`을 호소하는 이들은 주변의 사소한 움직임도 곧 도청의 징후로 판단하는 등 과도한 의심과 집착 증세를 보인다. 자연히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도청공포에 대한 이들의 반응은 실로 상상을 초월한다. 도청에 대한 의심 때문에 TV 인터넷 휴대전화 등 외부와 소통하는 일체의 기기는 모두 꺼둔다. 천장이나 문틈 등 혹시라도 자신을 지켜볼 만한 공간이 있다 싶으면 테이프 등으로 봉해 놓는 것은 물론이며, 휴대전화나 e-메일의 스팸메시지도 도청자의 소행이라 의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파트 주변에 잠시 머무는 차량도 자신을 감시하는 일당의 것이라 믿으며, 아나운서나 기자들이 자신을 도청해 드라마나 뉴스에서 개인의 사생활을 소재로 한 방송을 하고 있다고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혹시라도 집을 비우면 새로운 도청기가 설치될까 두려워 끼니를 걸러가면서도 외출을 못하는 부부도 있었다. 이들 부부의 집은 온갖 간이형 도청탐지기로 도배돼 있었다.

대체로 한두 차례 도청을 경험한 이들이 이 같은 도청공포증을 겪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도청의 공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이들의 정상적 사회생활을 불가능케 한다는 데 있다.

도청을 당하고 있다는 상황을 수사기관에 전달해 봐야 마땅한 증거도 없는 상황이라 퇴짜맞기 일쑤. 따라서 이들은 도청을 차단키 위해 스스로 온갖 대비 수단을 동원하곤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점차 사회와 격리돼 가는 것이다.

도청방지전문업체 통신보안의 안교승 사장은 "도청기 제거를 의뢰해 오는 개인고객 중 이처럼 도청에 대한 극단적 공포를 호소하는 이들이 약 30% 수준에 달한다"며 "휴대전화나 인터넷 등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대부분의 수단을 차단하면서 스스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도청에 대한 극단적 공포를 치유하기도 쉽지 않다. 도청이 이뤄지고 있다는 확신이 이들의 머릿속에 굳게 자리잡은 상황이라 오히려 외부의 따가운 시선을 불합리하게 여긴다.

도청전문탐지업체 한국스파이존의 이원업 부장은 "상담접수를 받고 접한 고객에게는 도청기 설치 여부를 탐색한 뒤에 반드시 안전한 장소라는 현실을 인식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들 스스로 도청을 당하고 있다는 확신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곤 한다"고 말했다.

정순식 기자(sun@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