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2005-07-27 17:02]

 

X파일 계기로 본 국내 도청시장

대부분 저가수신기...불륜등 사생활엿보기 범죄활용

최근 단속 심해지자"혹시 형사 아니냐"거래 쉬쉬

 

26일 오후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 3층. 도청감지기를 파는 구두수선소만한 크기의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도청기를 집단적으로 거래하는 이곳의 이날 표정은 한산하다 못해 황량할 정도. 한 상점를 찾아 `도청기 있느냐`고 묻자 가게 주인은 "혹시 기자나 형사 아니냐"며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아니다`고 하자 "도청장치는 80만원부터 수백만원까지 있는데 40만원에 줄테니 그냥 가져가라"며 주변을 살폈다. 또다른 상점에선 "요즘 안기부 X파일 사건이 터지고나서 경찰 단속이 심해진 탓에 물건을 아예 갖다 놓지 않는다"면서 "거래를 오랫동안 해 온 안면이 있는 친구들에게만 물건을 보여준다"고 귀띔했다. 같은 날 용산역 부근 전자상가 일대. A상점 직원은 "도청은 불법이라 부르는게 값"이라면서 "수십만원짜리는 품질면에서 도청장치라고 보기 힘든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전자상가를 중심으로 한 도청시장은 음지에서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일반인들은 안기부 X-파일 사건을 계기로 구매를 다소 꺼리는 형국이지만 안면을 터 온 `지인`들을 중심으로 한 거래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그 `지인`들의 대부분은 일반 가정집에 도청장치를 달고 불륜 등의 내용을 엿들은 뒤 협박하는 범죄자이자, 범죄를 위해 사생활 엿보기를 도와주는 판매상들이다. 이같은 끊이지 않은 악순환의 연결 고리 탓에 대한민국이 `도청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당 4명이 오피스텔을 거점으로 인근 가정집의 무선전화 내용을 강력 수신기로 도청하다 경찰에 적발된 사건은 도청의 그물망이 어디까지 펼쳐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청계천 전자상가에서 주로 판매되는 도청 관련 기기들은 도청 장치와 이를 제거하는 탐지기다. 도청과 탐지기의 관계는 도청의 기술 발달에 따라 방지기술 또한 발달해 영원한 승리자 없는 창과 방패의 싸움으로 흔히 비유된다. 이 모순(矛盾) 판매처에는 간단한 유선전화 도청기에서부터 광대역 수신제거기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모습을 감춘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가장 흔한 유선전화 도청기는 수화기나 전화기 내부 회로기판에 연결하는 간단한 설치 방법으로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품목. 가격대가 20만~40만원대로 비교적 저렴하다. 범죄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진 광대역 수신기는 가정용 무선전화기 도청 협박 사건의 대표적인 `무기`로 꼽힌다. 가정용 무선전화기가 주파수 대역이 낮고 보안성이 없어 수신기를 통한 범죄 대상으로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세운상가의 한 상인은 "광대역 수신기를 이용하면 500m까지 전파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무선전화기의 내용을 그대로 들을 수 있다"면서 "일반 도청장치와 달리 구입 자체가 불법이 아니어서 많이 팔리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 수신기를 이용한 일당의 범죄 행위를 놓고 해당 경찰이 `법의 애매성`으로 곤혹스러워하기도 했다. `수신기는 청취하거나 녹음하는 경우에만 처벌가능하다`는 정보통신부의 `통신비밀보호법`때문에 수신기를 이용한 도청 정황을 잡고도 `청취`한 현장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수신기의 가격대는 1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폭넓게 형성돼 있다. 전문 스파이들이 이용하는 최첨단 도청장치들도 등장하고 있다. 레이저 도청기는 유리창에 레이저를 발사, 사람의 육성에 미세하게 떨리는 유리창의 진동에서 추출한 음성성분을 분석해 수신하는 첨단장치다. 전문가들은 "이 도청기는 국내 몇 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국제적인 산업스파이들이 주로 이용하며 가격은 최고 6000만원선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청진기 원리를 이용한 콘크리트 도청기는 송신기를 바닥에 밀착해 최대 50m반경안의 모든 소리를 깨끗이 들을 수 있다. `패시브 리플렉터`라는 첨단 도청장치는 신축건물을 지을 때 시멘트안에 수신장비를 넣어 도청의 완벽성에 도전하는 최신 테크놀러지다. 과거 러시아에서 미 대사관을 지을 때 이 장비를 넣었다가 미국에 발각돼 건물을 다시 지은 일화는 유명하다. 수신장비 배터리 수명이 10년간 유지된다.

도청 제거에 이용되는 탐지기 가운데 `잠자는 도청기`형은 미작동 도청기를 원격조정으로 찾아내는 보안검색의 기본 장비이다. `광대역 인터셉터`는 광대역 수신기 등 무선 도청전파를 탐지하고 확인하는데 쓰인다. 보안업체 스파이존의 한 관계자는 "도청기 크기가 엄지손톱의 4분의1 정도로 기술이 소형화되고 고도화됐다"면서 "형태도 다양해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식의 우를 범하지 않기위해 예방을 위한 탐지기를 선호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150만원 상당의 이 예방 탐지기는 유선전화 2개 회선과 무선전화 단자, 레이저 도청까지 방지하는 일체형 기기. ㈜한국통신보안 안교승 사장은 "국내는 도청으로 인한 사고가 많아 도청방지 기술의 노하우도 많이 축적됐다"면서 "세계적인 기술 수준을 자랑하는 국내 도청방지시스템을 구축하는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치밀해지는 민간 도청 피해를 입지 않기위해 "가급적 집에서는 무선전화기 대신 유선 전화기를 이용하되 주변 단자함이 닫혀있는지 적극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고금평ㆍ권로미ㆍ신소연 기자(daniel@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