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X파일' 보안업계 신바람

 

번득이는 섬뜩한 두 눈.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표지에 등장한 그림이다. 특히 사회적 통찰과 풍자로 유명했던 이 작품에서 빅 브라더는 사회 곳곳을 감시한다. 지금의 우리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생활을 보장받을 수 없는 사회가 돼 버렸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미소짓는 분야가 있다. 바로 ‘보안산업'이다.황금어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보안 비즈니스의 실태와 전망을 살펴봤다.

보안업계에 뛰어든 비즈니스맨에게 올 여름은 유례없는 성수기다. 나라를 뒤흔들어 놓은 ‘X파일' 사건 이후 도청방지ㆍ탐지를 문의하는 고객이 급증했다. X파일 사건 전과 비교해 업무량과 매출액이 적게는 2배, 많게는 3~4배까지 늘어난 보안전문회사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국내에 도청방지ㆍ탐지회사는 몇 개나 있을까.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도청방지' 또는 ‘방청'(도청방지), ‘불법감청탐지' 등의 단어로 검색해 보면 불법감청장비를 색출해내는 보안회사들의 홈페이지가 속속 뜬다. 이 가운데 정보통신부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업체는 단 13개에 불과하다.

정보통신부의 한 관계자는 "정보통신부가 지난해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하면서 ‘불법감청설비탐지업' 등록제도를 신설, 현재 13개 업체가 등록돼 있다"고 말했다. 불법감청설비탐지업은 불법적으로 행해지는 감청, 즉 도청에 사용되는 장비를 탐지해주는 업종을 뜻한다.

정통부는 지난해 이들 불법감청설비탐지업의 변경등록과 휴지ㆍ폐지신고에 관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했다. 그 결과 20~30개에 이르렀던 불법감청탐지업체 가운데 기준 요건에 미달하는 곳은 자연스럽게 영업을 할 수 없게 됐다.

불법감청설비탐지업의 등록요건을 갖추려면 5,000만원 이상의 자본금이 있어야 한다. 또 이용자보호계획, 사업계획, 기술인력과 탐지장비에 대한 세부기준 또한 정부 기준에 맞아야 한다.

국내의 13개 불법감청설비탐지회사들은 보안전문업체, 도청탐지방지업체 등으로 자사를 소개하고 있다. 서울에는 금성시큐리티, 한국스파이존, 한국통신보안, 에이치디에스씨큐리티, 코세스코리아, 참씨큐리티, 에스엔에스에이스, 에스원, 그리고 시스라는 약칭으로도 불리는 시큐리티아이시스템이 있다.

아울러 경기도에는 공공칠월드라는 회사가, 전남 광주시에는 태극안전보안, 충북 청주시에는 코드원, 부산시에는 휴민트가 있다.

이들 13개 업체 외의 회사는 불법이라고 보면 된다. 불법감청설비탐지업 등록 없이 탐지업을 할 경우 통신비밀보호법 제17조에 의거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또 등록 후 영업 중 알게 된 고객정보를 누설하거나 고객에게 중대한 손해를 입혔을 경우 영업정지와 등록취소의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고객의 프라이버시에 민감한 비즈니스인 만큼 보안비즈니스는 요건이 까다롭다. 이와 같은 도청탐지ㆍ방지 비즈니스의 시장규모는 아직까지는 크지 않다.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급격히 성장해 연 150억~200억원 정도"라고 추산하고 있다.

김규식 시큐리티아이시스템 사장은 "아직까지는 대규모로 운영되기보다는 사무실 형태로 인력을 파견하고 있다"며 "보안비즈니스가 태동해 성장의 도약을 하려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사장은 이어 "X파일 사건 이후 일이 급증해 7월에 비해 8월에는 200~300% 늘었다"며 "도청장비 탐색업무도 X파일 사건 전에는 2~3일에 1건 했던 반면, 사건 이후 하루에 2~3건, 많으면 10건까지도 한다"고 덧붙였다.

도청장비를 탐색하는 곳은 주로 대기업 회장실이나 중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회의실, 사무실이다. 개인의 문의도 급증, 최근에는 기업과 개인고객의 비율이 7대3에 이른다.

권병일 시큐리티아이시스템 팀장은 "도청장치 탐지비용은 평당 1만원"이라며 "기업고객은 주로 60~70평대의 작업을, 개인고객은 30~50평을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사회적 관심과 함께 최근 몇몇 업체들은 아예 TV드라마에 도청기 탐지장비와 도청장비 탐색직원을 협찬하기도 했다. 부산에 위치한 업체 휴민트의 손호관 과장은 "최근 MBC 드라마 <변호사들>에 장비와 직원을 협찬했다"고 말했다. 또 한국통신보안은 일찌감치 영화 <쉬리>와 드라마 <경찰특공대> 등에 도청장비를 대여해 줬다. 이렇게 활기를 띤 도청방지ㆍ탐지 비즈니스는 도청기술에 질세라 진화하고 있다. 도청기를 벽걸이시계와 소파, 테이블 밑에서 찾아내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이원업 한국스파이존 부장은 "엄지손톱의 4분의 1 크기의 도청기도 자주 발견된다"며 "기업체 비서실과 임원실의 ‘딱풀'에까지 도청기가 숨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한국스파이존은 립스틱과 전기 콘센트에서 실내 대화 도청장비를 찾기도 했다.

특히 휴민트는 만년필과 계산기, TV 리모컨, 심지어 곰인형에서도 도청기와 몰래카메라를 탐색해냈다.

휴민트의 한 관계자는 "곰인형의 눈에 몰래카메라가 설치된 적이 있었다"며 "천장에 달린 화재경보기에도 몰래카메라가 부착된 사례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총성 없는 비즈니스 전쟁이 매일 벌어지는 곳이 바로 기업현장이다. 하지만 도청과 감시의 불안감은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도 느끼고 있다. 그 결과 인터넷쇼핑몰의 도청장비제품의 매출도 유례없이 늘어났다. 인터넷 경매사이트 옥션의 홍윤희 과장은 "X파일 사건 전에 비해 도청방지 제품의 판매가 4배 늘어 하루 300여개 팔린다"며 "휴대할 수 있는 1만~2만원대의 열쇠고리와 은장도 형태의 도청ㆍ몰래카메라 탐지기가 특히 인기"라고 말했다.

옥션에서 도청 감지기를 판매하는 네오시큐의 전일권씨는 "도청장비는 원래 선거 즈음에 많이 팔리는 선거특수품"이라며 "하지만 최근에는 선거 때보다 더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또 배동철 옥션 이사는 "X파일 사건으로 일반인 사이에도 도청 불안감이 확산됐다"며 "물품을 비교적 쉽게 주문할 수 있는 인터넷으로 구매자들이 몰린 것을 보인다"고 했다.

아울러 사이버상에서의 정보보안에도 관심이 몰리고 있다. IT(정보통신) 발달과 함께 인터넷상에서의 보안도 문제가 되는 만큼 개인정보의 해킹을 막는 비즈니스도 다양해지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또한 회원들의 보안을 강화하고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경우 ‘보안넷'이라는 코너를 마련, 컴퓨터 바이러스 검사는 물론 개인 명의도용방지까지 시행하고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지난 6월 아예 하반기 주요 사업전략의 일환으로 ‘생활밀착형 보안 섭스'를 택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한 관계자는 "'한메일넷'을 생활밀착형 서비스로 개편했다"며 "이번 개편으로 한메일넷을 단순히 편지를 주고받는 창구의 역할에서 벗어나도록 했다"고 말했다. 메일로 보안 등 개인의 온라인 생활을 종합 관리하도록 했다는 것.

그 가운데 ‘명의도용방지'는 본인도 모르게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를 실시간으로 차단, 주민등록번호를 보호하는 서비스다. 인터넷 안전에 민감한 회원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메일의 명의도용방지 관련 매출액이 증가하자 다른 포털사이트 또한 이를 주시하고 있다. 금융 섹션에서만 있던 명의 도용서비스를 점차 메인 서비스로 노출시키는 추세다. 명의도용방지 서비스 등 보안 비즈니스의 성장력을 간파한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스마트 온'이라는 또 다른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 서비스를 통해 네티즌은 인터넷 뱅킹 등에 이용하는 온라인 공인 인증서를 한메일넷 안의 전용 저장 장치에 저장할 수 있다.

집과 학교, 회사 등의 장소에 따라 사용하는 PC가 바뀌더라도 한메일넷에 접속해 공인인증서를 관리, 이용하는 원리다. 다음측은 사용자의 금융데이터 등을 하드디스크에 저장하지 않고 임시 메모리에 저장해 사용한 후, 사용이 종료됨과 동시에 임시 메모리에서 삭제하도록 설계했다. 하드디스크에 저장한 금융데이터의 해킹 위험을 줄였다는 설명이다.

개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다른 사람이 악용할 수 없도록 만든 다음의 개인 명의도용방지 서비스의 경우 서울신용평가정보와 손잡고 진행하고 있다. 서울신용평가정보는 ‘사이렌24'라는 서비스를 개발, 가입한 회원의 주민등록번호 도용을 막는다.

서울신용평가정보의 한 관계자는 "회원의 주민등록번호가 회원의 동의 없이 특정 인터넷 사이트에 사용되려 하면 그 주민등록번호 사용을 실시간으로 차단한다"며 "해당 회원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e메일로 이 사실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회원이 직접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할 때만 차단기능을 일시 해제할 수 있는 이 서비스의 이용료는 월 990원. 서울신용평가정보는 이 ‘사이렌24'라는 서비스에 힘입어 지난 5년간의 적자를 뒤로하고, 올해 1/4분기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휴대전화제조업체도 보안 비즈니스의 중심에서 회자되고 있다. 지난 2003년 팬택앤큐리텔이 ‘2중 비화 휴대전화'를 개발했지만 판매되지는 않았다. 도ㆍ감청을 방지하기 위해 개발된 이 ‘비화(秘話)폰'은 음성통화를 암호화해 기지국으로 보내고 다시 상대방의 휴대전화로 암호화된 음성신호를 보내 통화하는 휴대전화다.

X파일 사건 이후 비화폰에 초미의 관심이 몰렸지만 아직 상용화 단계는 아니다. 노순석 팬택앤큐리텔 상무는 "2003년 개발 당시에는 화소수 경쟁이 치열, 비화폰에 역량을 집중할 수 없어 출시하지 않았다"며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비화폰에 대한 시장의 수요를 관망하며 시장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개인이나 기업의 정보 지키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2005년 여름. 보안 비즈니스는 젖먹이 아이 하루 다르게 성장하듯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뿜어내고 있다.

이효정 기자 jenny@kbizweek.com

-----------------------------------------------------------------------

 

[ INTERVIEW ] 안교승 한국통신보안 대표이사

 

매출 2배 늘어...연 단위 계약 급증

"보안비즈니스라는 업종 자체가 생소하던 1996년 회사를 설립해 줄곧 몸담아 왔습니다."

안교승 사장이 이끄는 한국통신보안은 정보통신부에 등록된 13개의 불법감청설비탐지업체 중 하나다. 인터뷰 중 3분에 한 번꼴로 울리는 문의전화로도 비즈니스의 성장세를 가늠할 수 있었다. 실제로 최근 한국통신보안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2배 늘었다. "8월 들어 하루에 30~40건의 문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계약은 3~4건 이뤄집니다."

통신엔지니어로 무전기 등을 연구해 오던 안사장은 92년 보안사업의 시장잠재력에 눈을 떴다. "92년 대통령선거 당시 부산 ‘초원복집 도청사건'이 일어나 화제에 올랐죠. 이 사건에서 도청방지사업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아마추어 무선인 햄(HAM)에 빠져 있던 안사장은 각종 통신장비의 원리를 일찌감치 터득했다. 도청방지ㆍ탐지 기술을 직접 연구하기 시작한 그는 회사 설립 초창기에 만든 여행용 도청방지장비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대기업과 금융권, 정치권에서 고객을 모으기 시작한 그는 사업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일회성 도청탐지에서 상시 점검서비스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최근에는 아예 관제시스템을 운영하며 365일 24시간 도청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안사장과 회사 연구원들이 개발한 ‘R5000'이라는 도청 상시 탐지장비는 약 150만원을 호가한다. 20평 정도의 사무실이나 방에는 1대, 그 이상의 평수에는 2대 이상을 설치한다.

"R5000을 설치한 공간의 도청 여부를 실시간으로 감지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유선전화와 무선도청기, 레이저도청을 탐지할 수 있습니다. 상시 관리서비스는 보통 2년 단위로 계약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청장비 발견율은 어느 정도일까. 회사를 설립한 96년에는 6~7%에 이르렀던 발견율이 최근 3%로 줄었다. "기업보안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사전에 도청을 예방한 기업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도청기술도 외국 못지않다는 안사장은 도청탐지장비인 R5000의 수출도 염두에 두고 있다. "실제로 해외에서 문의해 온 적도 상당수입니다. 기술규격을 맞추는 문제가 남아 있어 지금은 검토 중입니다. 일단 폭발적으로 늘어난 국내 물량부터 소화해야죠."

보안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안사장은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도청방지법을 귀띔해줬다. 먼저 도청이 쉬운 무선전화는 금물이다. 대신 유선전화를 사용하는 편이 낫다. 또 아파트의 경우 현관문 밖이나 아파트 입구에 설치된 단자함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청장비 또한 발달해 크기가 작아졌지만 그렇다고 모래알 크기만한 것은 아닙니다. 선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단자함에서 이상기기를 발견하면 의심하고 확인해야 합니다."